2019. 4. 25. 05:35ㆍ논문 밖 과학읽기
2018-06-14 11:33)
미국 CDC에 있는 작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원숭이 두개골을 들고, 조개껍질과 털로 장식된 나이지리아 요루바교의 “천연두의 신 (God of smallpox)”인 “소포나 (Shapona)” 목각상이 전시되어있다. 소포나는 땅을 지배하는 신으로 소포나가 노하면 사람들이 곡물을 먹고, 그 곡물이 피부로 가서 천연두를 일으키는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오랫동안 믿었고, 그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소포나를 위해서 제사를 지냈었다. 천연두 백신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랄프 헨더슨 박사는 이 목각상을 선물 받으며 “이 목각상은 곧 과거의 유물이 되기 바란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수렵과 채집의 시기를 지나 경작과 가축을 기르면서, 인간은 수많은 “인수공통전염병”에 노출되어 왔다. 과거에 ‘신의 노함’이라고 여겼던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해 인간은 과학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정복해 나가고 있으나,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의 괴물”로 우리는 또 다른 인수공통전염병을 접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작가이자 [도도의 노래]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콰먼은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는 “현재의 괴물”인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자취를 찾기위해, 중앙아프리카의 정글, 중국 남부의 박쥐 동굴과 광둥성의 식용둥물시장, 방글라데시의 오지, 콩고 강변의 외딴 마을들,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과 호주와 미국을 누비며 박쥐, 침팬지, 고릴라, 사슴, 말, 사향고양이, 대나무 쥐, 앵무새 등의 다양한 동물들을 보유 숙주로 하는,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겪고 있거나, 겪게 될지도 모르는 “현재와 미래의 괴물” 대해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라는 책을 통해 세세히 이야기하고 경고하고 있다.
20세기에는 라사열(1969), 에볼라 (1976), 에이즈 바이러스 (1981), 에이즈 바이러스-2(1986), 한타바이러스, 헨드라 바이러스 (1994), 조류독감 (1997), 니파 (1998), 웨스트나일 (1999)에 의한 전염병이 확산되었었고,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전 세계는 사스(SARS-CoV, 2003), 돼지독감(2009), 에볼라(2014), 메르스(2015)의 위협적인 새로운 전염병의 유행을 직접 목도했다. 데이비드 콰먼은 이러한 병원체의 출현은 ‘불가항력’ 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가 저지른 일들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전염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라는 의문은 그의 긴 여행을 시작하기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이었다. 위의 전염병의 공통적인 특성인 바이러스, 그중에서도 RNA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이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이는 증식을 할 수 없지만, 숙주만 찾으면, 기생하고, 경쟁하고, 공격하고, 방어하고, 투쟁하고, 살아남고, 증식하고, 영원히 후손을 이어가며, 진화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떻게 숙주를 찾는 것일까? 어떤 숙주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최적화된 보유 숙주인 걸까?
RNA 바이러스들은 높은 돌연변이율과 많은 개체수를 통해 상황에 적응하며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즉, 이들은 복제 속도가 빠르며
(높은 역가), 급성감염을 일으켜 단기간 증상이 심했다가 사라지는 경향, 사라지거나 숙주를 죽이거나. 급성감염 시 재채기, 기침, 구토, 출혈, 설사 등을 통해 숙주로부터 바이러스가 배출되며, 매우 다양한 유전학적 변이를 발생시킨다. DNA 바이러스에 비해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고, 시간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RNA 바이러스는 높은 환경 적응 능력을 통해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렇게 , 헨드라, 사스, 니파, 에볼라는 박쥐를 뛰어넘고, 에이즈는 영장류를 뛰어넘고, 라사열, 한타바이러스는 들쥐를 뛰어넘고, 독감은 돼지와 조류를 뛰어넘었다.
이러한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이유를 저자는 생태학과 진화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병원체를 야생동물에 존재해 왔고, 때로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은 채, 수백만 년간 자연적 숙주와 함께 공진화해왔다. 인간의 폭발적 개체 증가로 숙주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사냥하고 생테계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병원체는 그들이 살아갈 또 다른 숙주로 종간 전파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면역게에 대항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킴로써, 신종 전염병”이 우리 눈앞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피츠버그 대학 공중보건대학원 학장인 바이러스학자 도널드 버크는 어떤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세 가지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인류 역사상 최근에 전 세계적인 감염을 일으킨 적이 있는 바이러스이고 (오르소믹소바이러스 (독감), 레트로바이러스 (에이즈)), 두 번째는 인간이 아닌 동물 집단에서 큰 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입증된 바이러스 (오르소믹소바이러스, 파라믹소바이러스(센드라, 니파), 코로나바이러스(사스, 메르스))일 것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내재적 진화 가능성 즉, 돌연변이 재조합이 쉽게 일어나 ‘인간 집단 내에서 신종 질병으로 나타나고,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 (레트로바이러스, 오르소믹소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라고 제시한다.
인류는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염병의 대유행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데서 그치고 비관적인
운명론에 빠져 체념하는 대신, 실용적인 대안으로 맞서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과학적 근거를 강화하여 보다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
실제 질병 과학과 공중보건 영역의 각국의 정부 및 국제기구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한 신종 인수공통 감염병의 위험에 대처하고 있다. 최근 빌 게이츠가 NEJM에 낸 기고1)에는 만약 1918년 독감 같은 호흡기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으로는 1개월 이내에 28,600명, 3개월 이내에 약 1000만 명, 6개월 이내에 33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예측하였다. 미래 인류에게 닥칠 “대유행”에 대비해, 전 세계의 정부와 사설 기관들이 합작해 “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 (CEPI)”을 만들었고, CEPI는 6억 3천만 불을 들여 “대유행”의 가능성이 큰 라사열, 니파바이러스와 메르스에 대한 신속대응 체계 확립과 병원체에 대한 효과적인 백신 개발에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컨테이젼]의 마지막 장면은 도입부에서 환자 제로였던 기네스 펠트로가 서명한 AIMM Anderson 사의 서류와 동일한 로고가 붙은 불도저가 등장한다. 그녀의 회사는 개발을 시작하고 숲에 살던 박쥐는 서식지를 잃고, 먹이를 찾아서 돼지우리로 간다. 그리고 그 박쥐는 먹던 바나나를 돼지우리에 떨어뜨리고, 그 우리에 살던 돼지는 고급 호텔 주방으로 팔려나가며, 호텔 주방장은 요리를 하던 중간에 손님인 “환자제로”와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결국, 인수공통 전염병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우리”라는 사실을 저자는 확실하게 상기시켜준다. 70억을 넘는 인간은 가장 번성한 생물종으로 생태계의 공존과 생물학적 다양성을 깨트리고 있다. 인류가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대한 국제적 이슈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중 하나는 인수공통 전염병 발병률과의 상관관계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딱딱하고 공포스러운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과관계를 통해 과학적으로 감염병에 접근해 나아가고,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에 대한 실패와 역경과 성공의 서사 또한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는 전염병의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들려준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파견되는 역학자들의 이야기, 실험실에서의 진단과 바이러스 분리, 유전체를 분석해 바이러스의 존재와 진화를 밝히는 실험자들의 이야기, 실제 자연에서 동물을 관찰하는 생태학자와 그들과 함께 탐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백신을 개발하는 백신 연구자들의 이야기까지 인수공통 전염병을 둘러싼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2014년 에볼라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 나는 미국 내 에볼라 대응팀의 연구지원팀에 참여했었다. 기관의 승인이 떨어지고, 이메일로 필요한 인력들의 코드가 발송되고,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에볼라 대응팀에 합류했다. 역학조사를 위한 인력부터,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실험실 코디네이터, 진단을 위한 생물학자와 미생물학자, 교육 전담팀, 커뮤니티 전담팀, 병동 코디네이터 등의 현장 인력과 더불어 24시간 대응팀, 홍보물 디자인팀, 백신 연구팀, 진단키트 생산팀, 격리팀 등 미국 국내에서 필요한 시스템이 빠르게 구축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 에볼라 대응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에게는 가장 두렵고 떨리는 시간이자 희열과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들이 이 책에 나온 모든 등장인물들이 향유했던 그 시간들과 동일한 감정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옮긴 강병철 꿈꿀자유 대표는 번역을 하게 된 소감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메르스가 돌았고, 병원들이 속절없이 뚫렸다. 국가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어이없고 무서웠다. 어이없음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운용하는 국가의 행정력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의료체계의 무력함에 대한 반응이었다. 무섭다는 건 그런 일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 남을 비난하고 희생양을 만들어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고질적인 병폐가 그대로 반복되는 데 대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통해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전망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는 자연의 힘 앞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조금 더 성숙되고, 준비된 모습으로 그 “언제”라는 시간에 가감 없이 발휘되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이 글을 통해, 정부와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옥 같은 시간 동안 메르스 대응의 최전방에 섰던 이들에게 격려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참고문헌
1. Innovation for Pandemics. Gates B,N Engl J Med. 2018 May 31;378(22):2057-2060. DOI:10.1056/NEJMp1806283
본 글은 브릭의 [논문 밖 과학읽기]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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