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만델라!

2019. 8. 8. 01:54여행

출장 마지막 날에야 호텔을 탈출했다. 호텔과 카지노, 컨퍼런스 센터가 실내로 다 연결되어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카지노 검문을 통과해서 학회에 참석했었다. 바깥공기에 대한 기대감은 투어 가이드의 차를 타고 호텔을 나가는 순간부터 무너졌다. 미세먼지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꼭 요하네스버그의 첫인상과 같았다. 남아공 친구들도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던 시내는 투어 가이드와 함께 차로만 훑어보았다. 텅 빈 건물들, 길거리의 시체처럼 누워있던 노숙자들, 안전을 위해 블록마다 서 있던 빨간 옷의 경찰들의 풍경을 스쳐 지나며, 결국 시내에 발 한번 디뎌보지 못했다.

 

 

 

 

요하네스버그 관광에서 늘 빠지지 않는 곳은 소웨토(Soweto) 지역이다. SOuth WEstern TOwnships 즉, 남서 거주지역을 줄여서 불려 왔었고, 현지인들은 “SO WhEre To”라고 부른다. 남아공의 아파르트 헤이트 (인종분리정책)으로 박해를 받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거주지역이다. 1976년 소웨토 봉기 (Soweto Uprising)는 아프리카 각 부족의 언어가 아닌 Afrikaans과 영어로만 교육을 시행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항의로 2만 명의 학생들이 거리에 나왔으며, 이로 인해 소웨토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현재 11개의 공용어가 통용된다고 하며, 자신은 줄루어를 사용하는데 자신의 손자는 학교의 영어교육으로 인해 줄루어를 잘 쓰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갈까 봐 커다란 돌로 눌러놓은 집, 간간히 세워져 있는 간이화장실. 남아공과 공동연구를 하며 소웨토 지역을 포함시켰던 이유가 그렇게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뒤로 또 다른 소웨토의 모습이 보인다. 잘 정리된 정부에서 지은 콘크리트 지붕으로 된 작은 집들. 가이드는 정부에서 지었지만 집이 너무 작아서 저 집에 들어갈 정도의 사람들이면 다른 데 가서 산다고, 그래서 보기 좋은 식빵같이 생긴 집들은 대부분 비어있단다. 또 다른 한편엔 최근에 지은 고급 주택과 월드컵 경기장이 보인다.

 

왜 소웨토가 관광지일까?
만델라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 이 지역이 유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종정책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 곳의 흑인들은 힘들고, 삶은 고되다. 정책은 사라졌으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인종 간의 격차를 소웨토의 풍경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최저임급은 50란드 ($3.5) 정도에 실업률이 60%가 넘는 곳, 이 곳의 흑인들은 이제는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이민 오는 또 다른 흑인들에 의해서 밀려나고 있다고 가이드는 이야기한다.
그는 투어 내내 끊임없이 “땡큐 만델라”를 외쳤다. 60에 가까운 그는, 남아공의 인종정책 하에 어린시절을 보냈고, 만델라로 인해 인종해방을 경험했으며, 이제는 또 다른 공평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마치 또 다른 “만델라”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