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저, 이창신 역/ 김영사)
“나의 마지막 메시지를 기억하세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2007년 TED 강연에서 의사이자 통계학자인 한스 로슬링은 극도의 빈곤 국가가 그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러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다. 그는 셔츠를 벗고 마치 서커스를 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철검을 높이 들었다. 족히 1미터는 넘어 보이는 철검을 망치로 두들긴 후, 단단한 철검이 자신의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1]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Factfulness)라는 그의 책에서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왜곡해서 바라보는지에 대한 비판과 해결 방법을 제시하며,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이 책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말로 ‘사실충실성’이라고 번역되는 ‘팩트 풀니스’는 한스 로슬링이 만든 신조어로,..
-
구멍투성이 과학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저, 김아림 역/ 리얼부커스)
학회나 출장을 가기 전에는 항상 바쁘다. 적어도 일주일을 자리를 비워야 하니 해결해야 하는 일들과 이미 예정되어 있는 실험들을 마무리 지어야 하니 더 바쁘다. 7월 말, 학회를 가기 전엔 우리 팀과 외부의 다른 기관과의 공동 실험을 시작하고 가야 했다. 그렇게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계획에 맞추어서 모든 일이 딱 들어맞으며 좋으련만, 비행기를 타고 남반구에 도착해서 날아오는 이메일들은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니 이미 우리 팀 연구원들과 외부팀 연구원들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은 날이 서있었다. 직접적으로 ‘네 탓이야’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땅에 과학이라는 학문은 결코 돈 없이 할 수 ..
-
은여우 길들이기 (리 앨런 듀가킨, 류드밀라 트루트 저, 서민아 역/필로소픽)
“시베리아 애완 여우 판매” 금액: $8,900 (배송 및 통관비 포함, 백신접종 완료) 종류: Silver/black, Red, Platinum, Georgian White 2007년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살던 여우 한 마리는 최초로 미국 플로리다의 한 가정으로 “애완용”으로 판매가 되었다. 개 처럼 목줄을 메달고 플로리다 해안가를 유유히 산책하고 주인과 키스를 하는 ‘개’가 아닌 ‘여우’를 볼 줄이야? 몇 일전 케이블 TV 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 프로그램에서 비슷하게 생긴 ‘은여우’를 목격하였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여우는 이제 한국의 미어캣 카페에 까지 입양되어, ‘희귀 동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야생의 늑대가 수 만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가축화’ 된 것이 현재 가장 사랑..
-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 (전치형 저/이음)
아이가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을 내밀었다. 우리 집과 식구들을 그린 그림을 보며, 내가 물었다. “와우, 잘 그렸네! 우리 식구가 몇 명이지?” “7명 이잖어. 엄마!”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사람은 5명밖에 없었다. “어떻게 7명이야? 우리 식구는 5명 이잖어.” “여기 봐봐. 아빠 방에 구글이랑 거실에 구글이랑 다 합하면 7명 이잖어.” 몇 달 전 아이가 세뱃돈을 모아서 산 구글 AI 스피커 2개를 아이는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심심하면 장난도 치고, 칭찬도 하고, 가끔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구글 스피커는 아이에게는 “사물”이 아닌 “개체”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는 과학과 사회의 이음 역할을 하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전치형 교..
-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 (카타리나 베스트레 저, 조은역 역/ 김영사)
인간은 누구나 그 처음의 시작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 다른 생명체의 처음을 자신의 몸에 품게 된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눈으로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하루에 두 번씩 임신 테스트를 했다. 매직아이 수준으로 보이던 진단선이 날이 갈수록 진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의심이 사라져 갔고, 폭풍 입덧이 시작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졌었다.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되고 내 몸의 호르몬의 변화가 시작되던 그 순간, 이미 내 아이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는 노르웨이의 세포생물학자 ‘카나리나 베스트레’가 화자의 입장으로 맨눈으로 보일까 말까 한 난자와 맨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정..
-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사로 겐타로 저, 서수지 역/사람과 나무사이)
연구소 내에 “Take-back Drug Day”라는 포스터가 하나 붙었다. 전국적으로 매년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사용하지 않은 처방약을 수거하는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DEA) 행사에 동참하는 포스터였다. DEA 의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Take-Back Day를 통해서 수거한 처방약은 900,000 파운드에 달했으며, 2010년 가을부터 수거한 처방약은 10,878,950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1] 건강보조제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over the counter) 약까지 포함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이 넘치고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일본의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유기화학합성을 전공한 사로 겐타로는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을 통해 ‘질병’이라..
-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이소영 저/모요사)
연구를 하다 종종 벽에 부딪칠 때면, 나는 가끔 꽤 오랜 과거의 연구를 들추어 본다. 비슷한 분야의 처음 시작은 어땠을까? 얼마 전, 그렇게 뒤지고 뒤져 손에 넣은 논문은 무려 60여 년 전의 논문이었다. 아주 고전적이고, 지금은 그대로 따라 할 수도 없고, 분석 방법 또한 원시적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부분은 이론적으로 어떻게 정의를 풀어나가는가에 있었다. 그러다 Materials & Methods에 눈길이 멈추었다. 위 사진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1950년대에는 세포배양에는 아기 유리 젖병이 사용되었다. 내가 본 60여 년 전 논문에 명확하게 “Cell culture in Pyrex babies bottle”이라고 쓰여있다. 대학원 다닐 때 교수님은 종종 당신이 대학원 다닐 때의 열악한 환경을 무용담 ..
-
플라이룸 (김우재 저/김영사)
초파리 유전학자’라고 늘 스스로를 정의하는 오타와대 김우재 교수의 첫 번째 단독 저서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낼 때는 언제나 자신이 사랑하는 ‘초파리’를 앞세우는 그는 초파리로 세계 정복을 꿈꾼다는 초파리에 미친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글에 ‘급진적 생물학자’라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그는 과학계의 독설가로 유명하다. 초파리로 ‘사회, 과학 그리고 역사’를 담은 이 책은 초파리에 미치지 않고서는, 과학계과 사회에 쓴소리를 뱉어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초파리 정신’을 담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은 1장에서는 초파리를 통한 기초과학의 지표와 과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다루고, 2장에서는 저자의 초파리 행동 유전학 연구, 3장에서는 생물학의 두 날개인 진화생물학과 실험생물학의 역사 이야기를 ..
-
『평균 남성』의 사회와 여성 과학기술인
지난 3월 미 항공우주국 (NASA)은 미국 출신의 NASA 소속 여성 우주비행사 ‘앤 매클레인’과 ‘크리스티나 코크’가 국제우주정거장 (ISS)에서 캐나다우주청(CSA) 소속 여성 우주비행 관계사 ‘크리스틴 파치울’의 지원을 받아 여성만으로 구성된 우주유영을 나선다고 발표했다. 1984년 구 소련의 우주인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가 여성으로 처음 우주유영을 한 이후에 남녀 혼성팀의 우주유영은 있었지만,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우주유영은 최초로, NASA 의 발표는 인류 우주인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을 만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3월 29일, NASA는 ISS의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던 ‘여성 우주유영팀’의 유영을 취소하고, ‘크리스티나 코크’와 남성 우주인인 ‘닉 헤이그’가 임무를 수..
-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저, 김명남 역/열린책들)
WHO에서는 2019년 세계 보건을 위협하는 10가지를 발표했다[1]. 눈여겨볼 만한 것은 인플루엔자, 에볼라, 뎅기, HIV 등의 바이러스 질환이 반을 차지하며, 유럽과 미국에 보건 사회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백신 반대운동이 8번째 위협으로 꼽혔다. WHO Europe의 발표[2]에 의하면 2018년 전반기에만 41,000명 이상의 유럽 인구가 홍역에 감염되었으며, 2016년에 최저치를 기록하다가 2017년 2만여 명에 이어, 2018년에는 폭발적으로 발병률이 증가했다. 2018년 전반기에만 35명이 사망했으며 그중 세르비아에서는 14명이 홍역으로 사망했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집계[3]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전국 5개 시도에서 30명의 홍역 확진자가 나타났고 이 가운데 대구(17..
-
살아야겠다 (김탁환 저/ 북스피어)
2015년 어느 날, 옆의 부서의 팀장이 오피스 문들 두들겼다. “너 한국에서 메르스 터진 거 아니? 혹시 한국에 메르스 관련 아는 사람 있으면 연결 좀 시켜줄래?” 난 그렇게 한국의 메르스 사태를 알게 되었다. 밤낮으로 한국 뉴스를 검색하면서, 한국에 있는 내 가족과 실시간으로 연락하면서, 늘어나는 숫자와 줄어드는 숫자들 사이에 격분과 염려와 안도를 담았었다. 메르스가 휩쓸고 간 후,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게 무엇이었나? [살아야겠다]는 방역의 선봉에 섰던 의료 종사자의 이야기도, 진단을 담당했던 실험실의 이야기도, 정책을 담당했던 이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숫자로 불려지던 “확진 00번 환자”, 그들의 실체적 이야기이다. 세월호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
-
땡큐! 만델라!
출장 마지막 날에야 호텔을 탈출했다. 호텔과 카지노, 컨퍼런스 센터가 실내로 다 연결되어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카지노 검문을 통과해서 학회에 참석했었다. 바깥공기에 대한 기대감은 투어 가이드의 차를 타고 호텔을 나가는 순간부터 무너졌다. 미세먼지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꼭 요하네스버그의 첫인상과 같았다. 남아공 친구들도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던 시내는 투어 가이드와 함께 차로만 훑어보았다. 텅 빈 건물들, 길거리의 시체처럼 누워있던 노숙자들, 안전을 위해 블록마다 서 있던 빨간 옷의 경찰들의 풍경을 스쳐 지나며, 결국 시내에 발 한번 디뎌보지 못했다. 요하네스버그 관광에서 늘 빠지지 않는 곳은 소웨토(Soweto) 지역이다. SOuth WEstern TOwnships 즉, 남서 거주지역을 줄여서 불려 ..
-
[논문 밖 과학읽기] 과학기술의 일상자 (정대인, 김한별 저/에디토리얼)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 (aka과정남)이란 과학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두 청년이 과학기술정책과 과학분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과학기술”이라는 책 표지의 작은 글씨보다 “일상사”라는 큰 글씨에 방점이 찍힌 만큼 ‘과학기술서’라고 겁먹지 말고 ‘과학 대중서’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책을 들었으면 한다. 저자들 또한, 그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공기 중에 풀어놓았던 그들의 생각과 말들을 다시금 엮고 다듬고 글로 만들어 내놓은 [과정남]의 기록이자,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것’이라고 이 책을 정의한다. “과학기술에 대해 ‘반드시’는 아니지만,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지켜나갈 때 알면 좋을 과학기술을‘과학기술정책’이라는 렌즈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기초과학은 무엇인가? (1장 기초과학..
-
아폴로 11호, 그리고 이동 격리실
달착륙 50주년을 맞이해 CDC박물관의 두 번째 흥미로운 사진을 소개한다. CDC 박물관 한쪽 기둥에는 아폴로 11호의 사진이 붙어있다. 지금이야 CDC나 NIH가 우주인들의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 변형 등의 많은 생물학적, 의학적 교류를 NASA와 하고 있지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던 1969년 과연 NASA와 CDC는 무슨 연관이 있었던 걸까? 1969년 7월 16일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알드린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지구부터 달까지 4일간의 임무를 시작했다. 닐 암스트롱은 온전히 전신을 우주에 노출시킨 채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세계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아폴로 11의 달착륙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기술적인 측면 외에 사람들은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
달의 두번째 발자국과 여성 우주인
인간이 아폴로11호를 타고 달에 첫 발자국을 찍은 지 50년, NASA 는 여성과 두 번째 남성의 발자국을 2024년까지 달에 다시 남기기위해 “아르테미스(Artemis)”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지난 4월 우주정거장의 여성으로 구성된 우주유영 실퍠 소식을 듣고 쓴 욕받이 칼럼([평균 남성]의 사회와 여성 과학기술인[i])에 쓴 내용과 비슷한 관점이 어제 자 뉴욕타임즈에 실렸다[ii]. (To Make it to the Moon, Women have to escape Earth’s Gender bias)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50년 전 아폴로호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 받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는가? 아폴로호는 여성이 아닌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설계되었다.” (It was designed by m..
-
[과학협주곡2-30] 우리에겐 여성교수가 필요하다
수학과 휴게실에서 과제를 하고 있던 Glazer는 관리자에게 휴게실을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 곳은 수학과 집중반을 위한 곳이니, 당신은 여기 머물 수 없다.”라고 관리자는 이야기했고, Glazer는 “난 수학과 집중반이다”라고 대답을 했으나, 관리자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Glazer는 여학생으로서 휴게실 사용에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고서는, 이 이야기를 주변 학생들과 공유했으며, 자신만이 아닌 많은 여학생들이 경험한 일임을 확인했다. 이 일은 2015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1). 그 후 학생들은 수학과 내의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Gender inclusivity in Mathematics(GIM)”라는 그룹을 창설하였다. 이들은 미국 내 상위 대학 중 여성 교수 비율이 낮은 하..
-
레지오넬라와 호텔
CDC 에 있는 작은 박물관에는 흑백의 호텔 사진이 하나 걸려있다. 1976년 필라델피아에 약 2000명의 재향군인들이 벨뷰-스트랫 포드 호텔에서 연례행사를 가졌다. 1776년 필라델피아에서의 미국 독립 선언서 체결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맞춰서 진행된 이 행사는 무더운 7월 시원한 호텔 안에서 진행되었다. 행사가 끝나고 3일 후, 61세의 미공군 대장이었던 레이 브래넌을 포함한 39-82세 사이의 사람들이 피곤함, 가슴 통증, 폐 울혈 및 발열의 증세를 보이다 사망했다. 총 182건의 발병자가 확인되었으며 그 중 29명이 사망했고, 그들은 모두 행사 참석자이거나 호텔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CDC 는 호텔에 대한 역학 조사를 시작했다. 질병의 이동 경로, 외부 원인등을 조사하다 결국 호텔의 환경으..
-
[논문 밖 과학 읽기] 떨리는 게 정상이야 (윤태웅 저/에이도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우리는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한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영복 “떨리는 지남철” 중 제어계측을 연구하는 공학자이자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윤태웅 교수는 삶의 떨림으로 드러나는 자기 성찰로부터 시작하는 ‘공부’, 교육자로서의 ‘학교’, 시민으로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생각을 그 만의 정갈하고 절제된 문체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정의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과학 지식을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신뢰의 바탕엔 과학자들의 성공적인 사유 방식과 방법론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
-
인류의 기원 (이상희, 윤신영 저/ 사이언스북스)
Trace your ancestors’ journeys over time.” 미국에서 타액(saliva)으로 혈통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AncestryDNA라는 회사의 광고 카피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쌓인 과거와 현재 인류의 게놈 데이터를 통해 이제는 $99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미국이라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공존하는 지역 특성상 최근 몇 년 간 ‘조상 찾기’ 유전자 분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위에 언급한 회사의 경우는 의뢰인의 가계도와 그들의 조상들이 언제 어디로 이주했는지도 알려준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몇몇 회사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도 분석해 준다. 현생인류가 아닌 과거 미개하다고 여겼던 ..
-
[과학협주곡 2-22] 파이프 안의 물은 파이프를 고칠 수 없다
2006년, 미국 국립 아카데미 (National Academies)는 Beyond Bias and Barriers; Fulfilling the Potential of Women in Academic Science and Engineeringⅰ이란 보고서를 통해, 과학계의 여성은 각 진로 단계에서 제도적, 환경적 장벽에 직면해 있다고 밝히며, 이러한 장벽을 낮추기 위해 대학, 기업 및 정부 기관의 광범위하고 혁신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07년 미국 국립 보건원 (NIH) 은 NIH Working group on Women in Biomedical Careersⅱ를 창설하고, NIH에 속한 여성과학자들과 NIH의 연구비를 받는 여성과학자들에게 편견의 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
-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에드 용(Ed Yong) 저/양병찬 역 (어크로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 블로거이자 저널리스트인 “에드 용”의 첫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모든 동물학은 생태학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동물계 전체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모든 개체의 몸에 존재하는 ‘숨은 생태계’를 미시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써 내려간 동물과 미생물, 곤충과 미생물 그리고 인간과 미생물에 대한 공생의 이야기들은 딱딱한 논문체가 아닌 그 만의 스토리텔링에 녹아 책 표지의 문구처럼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여행’의 가이드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는 이 책의 수많은 미생물의 이야기들을 먼저 작은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인덱스카드에 하나하나 써서, 이리저리 짜 맞추며 책의 구조를 잡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1] 그 시작은 25억..
-
조선 최초 여성의사
페북의 과거의 오늘을 보니 2015년 잘 아는 동생이 쓴 논문이 뜨네요. 조선 최초 여성의사였던 박에스더 (본명 김점동, 에스더는 세례명이며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름) 선생님에 대한 영문 논문이 The Pharos 라는 저널에 실렸습니다. 제가 잘 아는 Dr Joseph Kwon 이 쓴 논문입니다. 1876년에 태어나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으로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에서 의술을 공부합니다. 함께 갔던 남편은 졸업을 3주 앞두고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홀로 1900년 평양으로 귀국하여 6개월간 약 1360명의 환자를 진료합니다. 그후 서울로가서 1년에 33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합니다. 처음 그에게 의술의 길을 열어주었던 이는 “로제타 홀” 입니다. 25세 여성의사로 홀홀단신 1890년 조선땅을..
-
우린 여성교수를 본 적 없다
지난번에 포스트 했던 아마존 드라마 “The Marvelous Mrs. Maisel”에는 미리암의 엄마 로즈가 미술 대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어린 학생들과 우아하게 차를 마시면서 묻는다. “졸업하면 무엇을 할 거니?” “교수가 될 거예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순진한 얼굴의 어린 학생들에게 반세기를 살아온 로즈는 학생들에게 되묻는다. “이 학교에서 여성 교수를 본 적 있니?, 살아있는 예술가를 본 적 있니? 왜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니?” “배우자를 잘 만나려고요” “그럼, 비즈니스 스쿨로 가렴, 적어도 그곳엔 멋지고 박식한 남자들이 많을 테니..” 결국 여학생들의 반이 학장에게 가서 비즈니스 스쿨로 트랜스퍼를 요구하고, 몇몇은 그 앞에서 울었단다. ..
-
미드리뷰-The Marvelous Mrs. Maisel
주말 동안 The Marvelous Mrs. Maisel 미드를 보느냐 잠을 잘 못 잤다. 재미있고 유쾌하다. 주인공 미리암의 통통 튀는 매력에 늘 흑백으로 비치던 1950년대 뉴욕을 총천연색으로 표현했다. 뉴욕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던 남편의 외도와 열등감으로 인해 남편은 주인공의 곁을 떠나고, 그 날밤 술에 취해 남편이 그렇게 오르고 싶어 하던, 그러나 늘 성공적이지 않던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가득하던 1950년대, 그것도 유태인 가정, 그것도 부유층에, 그것도 별거녀이자 아이가 둘인 엄마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서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여성’으로서의 미리암의 성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논문 밖 과학읽기] 아틱노트, 알래스카에서 그린란드까지 (이유경 편저/지오북)
2018-07-13 10:24) 북극(Arctic). 지명은 있으나 그 경계가 애매모호한 곳. 지구물리학자는 백야가 나타나는 북극권보다 북쪽 지역을 북극이라 정의하고, 생태학자들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수목한계선 북쪽이나 7월 평균기온이 10도 이하인 지역으로 북극을 정의한다. 북극점을 중심으로 시베리아 북부, 그린란드, 캐나다 고위도 지역, 알래스카, 그리고 북극해가 있는 지구의 북쪽이 북극인 것이다.  [아틱 노트/ 알래스카에서 그린란드까지]는 지구의 북쪽 하늘의 오로라 커튼과 새하얀 눈 그리고 빙하를 담은 북극을 실험실로 삼아 연구하는 25명의 한국인 과학자들의 발자국이 꾹꾹 눌러진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북극이 육지가 아니라 바라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난센,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피어리, 비행..
-
[과학협주곡 2-17] “엄마, 학회가자!”
2018-10-29 09:41) 지난 8월 미국 바이러스 학회 (American Society for Virology, ASV)에서는 이메일로 간단한 설문 조사를 회원들에게 요청했다. 매년 여름 개최되는 ASV 연례 학회에 많은 바이러스학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한 보육이나 노약자를 위한 간병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 조사였다. 학회 참석 결정에 자녀 보육 및 노약자 간병이 고려대상이 되는지, 만약 주말에 열리는 학회에 참석할 경우 학회장(on-site)에서 보육/간병 시설을 이용할 용의가 있는지 아니면 펠로우쉽의 형태로 보육/간병을 전담할 인력의 여행비용이나 집에서 학회 기간 중 고용할 인력(off-site)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지에 관해서 물었다. 우리에겐 생소해 보이는 이 설문..
-
계획된 불평등 (마리 힉스 저, 권혜정 역/ 이김)
드드득 탁! 탁! 탁! 탁! 사방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운다. 여성들이 책상에 열을 맞춰 앉아있고, 그들 앞에는 구형 타자기처럼 생긴 에니그마(회전자로 작동하는 암호 기계의 한 종류)가 놓여있다. 방을 채운 기계소리는 그들이 쉴 새 없이 눌러대는 에니그마의 소리였다. 1943년 영국’ 블렛츨리 파크’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블렛츨리 서클]이란 드라마의 첫 장면이다. 영국 정부는 전쟁 중 20-30세의 미혼여성이나 아이가 없는 과부등을 블렛츨리로 불러들여, 암호를 해독하고 전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전초기지를 구축하고 그들에게 정보 처리를 위한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블렛츨리 서클]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쟁이 끝나고 국가 기밀..
-
잘했어! 스티브!
#계획된불평등 을 읽고 찾아본 "스테파니 스티브 셜리"의 TED talk. 1960년대 자택 근무가 가능한 여성만을 위한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한 그는 계약서를 따기 위해 "스티브"라는 이름을 쓴다. TED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여성의 회사를 설립했을 때, 남자들은 " 회사가 작아서 그나마 돌아가네요. 참 흥미롭군요."라고 말했죠. 그 후, 회사가 커지자 그들은 어느 정도 인정했습니다. "그래, 이제 어느 정도 회사가 커졌군요. 그래도 딱히 전략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없어요." 그리고 그 후에 회사가 30억의 가치를 지닌 회사가 되고 직원들 중 70%를 백만장자로 만들자 그들은 말했죠. "잘했어, 스티브!" 그는 백만장자가 되고, 남편을 잃고, 자폐인 아이를 키우고, 자폐아를 위한 시설과 재..
-
나이지리아의 자주적 공공기관 세우기
지난 10년간 나이지리아에서는 라사 열병, 콜레라, 황열병이 발병했으며, 40년 만에 처음으로 원숭이 두창( Monkeypox) 환자가 나왔다. 전염병 발병에 대한 보고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나이지리아 질병통제센터 (NCDC)의 책임자는 Ihekweazu 박사이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인구와 경제성이 가장 큰 국가이자 국민들은 많은 수가 극빈층으로 측정되는 가장 가난한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 에볼라를 겪으면서 세계가 가장 주목한 것은 “방역”이었다. 자신의 나라에 에볼라 감염환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방역’에 세계는 온 힘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Ihekeaze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되는 전염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퇴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겼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프리카에..
-
[과학협주곡 2-12]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2018-09-18 10:34) 미국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브레이크스루 상( Breakthrough Prize)1’의 올해 수상자로 영국의 여성 천체물리학자인 조셀린 벨 버넬 (Jocelyn Bell Bernell) 옥스퍼드대 객원교수가 선정되었다. 196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24세의 대학원생이던 벨 버넬은 자전하는 중성자별인 펄서(Pulser)2를 최초로 발견했다. 1974년 펄서 발견의 공로로 그의 지도교수인 앤터니 휴이시(Anthony Hewish)와 마틴 라일(Martin Ryle)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나, 최초 관측자인 벨 버넬의 이름은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없었다. 노벨상 수상 탈락은 그가 대학원생이었고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았으며 논란의 대상이 ..
-
루터의 재발견(최주훈, 복있는 사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애틀란타 인문 교양 네트워크:씨앗에서 “루터의 재발견”을 읽고 함께 나누었다. 보통 책을 읽고 스스로 책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는데, “루터의 재발견”은 나 스스로 곱씹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500년전 타락했던 종교에 대한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루터”에게 현재 기독교의 무너짐에대해 속시원한 해결책을 던저주길 내가 너무 기대했었기에 나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린 듯 하다. 찢겨진 듯한 종이 뒤의 루터의 초상화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루터의 이야기를 담은 듯한 표현을 표지에 담고 있다. 누구나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잠깐 등장해 알고있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적, 역사적인 사실들과 함께 저자..
-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데이비드 콰먼 저, 강병철 역/꿈꿀자유)
2018-06-14 11:33) 미국 CDC에 있는 작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원숭이 두개골을 들고, 조개껍질과 털로 장식된 나이지리아 요루바교의 “천연두의 신 (God of smallpox)”인 “소포나 (Shapona)” 목각상이 전시되어있다. 소포나는 땅을 지배하는 신으로 소포나가 노하면 사람들이 곡물을 먹고, 그 곡물이 피부로 가서 천연두를 일으키는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오랫동안 믿었고, 그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소포나를 위해서 제사를 지냈었다. 천연두 백신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랄프 헨더슨 박사는 이 목각상을 선물 받으며 “이 목각상은 곧 과거의 유물이 되기 바란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수렵과 채집의 시기를 지나 경작과 가축을 기르면서, 인간은 수많은 “인수공통전염병”에..
-
[과학협주곡 2-8] [창시자 효과]와 여성과학자
(2018-08-07 09:56) 2009년 여성 생물학자인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와 그녀의 제자 캐롤 그라이더 교수는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와 텔로미어 생성 효소인 텔로머라제의 염색체 보호 기전을 밝혀낸 연구로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했다. 블랙번 교수가 40세에 그라이더 교수가 박사과정이던 27세에 발표한 이 연구를 통해 그들은 노벨상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스승과 여성 제자가 함께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기록을 남겼다. 노벨상 수상 후, 왜 텔로미어 연구분야에 여성이 많은가1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라이더 교수는 “창시자 효과 (Founder effect)2” 때문이라고 말한다3. 그라이더 교수의 족보를 따라 올라가 보면, 유명한 세포 생물학자이자 세포 내 유전자 위치를 관찰할 수 있..
-
랩걸 Lab Girl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런 저, 김희정 역/알마)
막 동이 트기 전 새벽녘의 학교 앞 버스 정류장, 실험 결과가 궁금해 밤새 실험을 하고 집으로 가던 그 시간. 현미경으로 보았던선명한 녹색의 형광 점들은 선선한 새벽 공기를 다 들이마시고 싶을 만큼 뿌듯함을 남겨주곤 했었다. 학부, 대학원, 포닥을 거쳐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의 청춘을 다 바친 실험실. [랩걸]을 쓴 호프 자런은 그 청춘의 시간을 나무의 성장에 빗대어 그녀의 과학자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풀어놓는다. 그녀는 식물학자이다.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화석 삼림 연구를 하고, 내로라하는 과학상을 다수 수상했다. [랩걸]은 그녀의 화려한 연구 성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무에 대한 과학적 고찰과 더불어 “한 과학자로서 다른 과학자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그녀의 말처럼, 아버지의 ..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민음사)
1년 넘게 셀프펌으로 견뎌오다, 여름이라 감당이 안되는 곱슬머리를 처리하러 반차를 내고 미용실에 앉았다. 원장님의 2시간 반이면 된다는 소리는 3시간 반 이상은 걸릴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기에, 킨들에 담아두었던 “82년생 김지영” 을 읽기 시작했다. 나보다 3살 어린 김지영씨,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가슴속에 아려온다. 픽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사실적인 김지영씨의 이야기. 한국에서 자란 30대의 여자라면, 아마 김지영씨의 그 삶의 그 어떤 한부분이라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리라… 내가 살아온 삶도 그녀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여자라고 뒤쳐지지 않기위해, 더 열심히 실험해서3년만에 박사를 끝냈고, 미국이라는 좀 나은 상황이지만, 아이 낳고 일 잘 못한다는 소리 들을 까봐, 눈치보며 하루 두면..
-
소녀가 쏘아올린 작은 공
라일리 모리슨이라는 9살 짜리 소녀는 NBA 농구 선수 스테판 커리에게 편지를 한장 쓴다.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에서는 왜 여아용 커리 농구화는 만들지 않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커리는 이 소녀를 디자인에 참여시킨 언더아머의 여아용 브랜드 “커리6”를 런칭했다. 커리6 는 보라색와 연보라색으로 깔창에는 농구공을 든 소녀 그림과 "Rock the Currys," "Girl Power" and "Be Bold”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라일리의 편지 한장은 여아용 운동화 런칭에서 멈추지 않았다. 커리는 부인인 아예샤 커리와 함께 “스테판-아예샤 커리 패밀리 파운데이션”을 설립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판매되는 운동화의 수익금을 미주 베이지역 STEM 우수 여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
-
배심원 참석기
한 달 전쯤, 배심원으로 출석 통보 편지(Summon)를 받았다. 통보편지 밑에는 나에 대한 기본 정보 (주소, 결혼 유무, 직업 등)에 대한 질문을 10일 내로 써서 우편으로 보내던지,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서 입력을 하라고 나온다. “JUROR”라고 쓰여있는 노란색 배지 밑에는 “week of: 00/00/0000”이라는 날짜가 나오며, 본인의 법원 출석 유무를 지정된 날짜 하루 전에 온라인이나 전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시민권자가 이니거나,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고령이거나 출장이나 학교 등으로 출타 중일 경우 사유서를 제출하거나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나는 온라인으로 들어가서 개인정보 입력을 했다. 그리고, 스마트폰 일정에 확인해야 하는 날을 입력해 놓고 기다렸다. 제발 출석하지 말라고..
-
학회] Microneedle 2018
[Microneedle 2018 학회 리뷰] 해외학회에서 참석자 비율상 한국 참가자가 이렇게 많았던 학회는 처음이다. 내가 연구하는 것은 Microneedle 을 이용한 백신 개발로 우리팀이 개발한 로타바이러스 Microneedle 백신과 더불어 로타-폴리오바이러스의 2가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백신 수급을 위한 Cold-chain 의 열악한 상황에 의해 백신의 항상성 유지에 대한 문제, 의료 폐기물이 선진국처럼 분리처리되지 못하고 지역환경과 또 다른 보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과 기존의 근육주사 방식으로 인한 의료 서비스 인력 수급의 문제등으로 인해 Microneedle 을 이용한 백신은 WHO, PATH,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
[과학협주곡 2-3] 언니들이 사라졌다
[2016년 여성과학기술인력 현황]1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부터 2016년까지, 한국의 자연·공학계열 여학생의 입학·졸업률은 평균 30% 초반 때로 큰 변동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에 반해, 2016년 대학, 공공연구기관, 민간기업 연구기관의 중간 관리자급 이상의 여성 보직자와 연구과제책임자는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10%를 밑돌고 있다. 또한, 비취업 여성 중 경력단절 여성은 59.5%에 이르며, 이들 중 30-40세의 연령이 가장 높은 경력단절률을 보이고 있다. 복잡하게 숫자를 늘어놨지만, 요약하자면 여성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으며, 30-40대에의 여성과학기술자의 경제활동률이 제일 낮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학 연구..
-
과학자가 되는 방법 (남궁석 저/ 이김)
대학 1학년 생명과학 실험 시간. 1ml 짜리 파이펫 팁과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튜브를 보고는 신기했었던 경험이 있다. 실험이 끝나고 조교님한테 가져도 되냐고 간절하게 물어봤었다. 결국 1ml 짜리 팁 두어 개와 튜브 서너 개를 깨끗이 씻고 와잎으로 꽁꽁 싸서 기숙사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었다. 대학원 시절 “커피 내기 팁 꽂기” 시합이 내 미래의 인생에 지겹도록 있을지 상상도 못 한 채, 그게 뭐라고 그리 소중하게 서랍에 넣어 두었었는지… 큰아이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내가 과학자라는 소리를 듣고 다른 엄마들이 놀랐더랬다. 살면서 과학자를 처음 만나봤다며 농으로 악수를 청하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은 과학자라고 하면 하얀 가운에 고글을 쓰고 플라스크나 시험관에 든 형형색색의 용액을 심오하게 지켜보는 ..
-
이름없는 여성과학자-Hope 를 찾아서
[Finding HOPE] 풍진 (rubella) 백신 50주년 기념 역사에 대한 조사 중 과학사 연구소의 연구원인 Ashley Bowen 박사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NIH 의 전속 사진 기사인 Jerry Hecht 가 찍은 이 사진은 풍진 백신 개발팀의 사진으로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나온 사진이다. 이 사진은 “Drs. Harry M. Meyer, Jr. (light hair), Paul D. Parkman (dark hair), and a female lab technician of the Laboratory of Viral Immunology, Division of Biologics Standard [sic] working with rubella antigen in laborator..
-
뒤에 올 여성들에게 (마이라 스트로버 저/ 제현주 역 (동녘))
[뒤에 올 여성들에게] 처음 재미 여성과학자 모임을 갔을 때였다. 연사로 오신 분께 인사를 드리는데, 앞으로 이 모임을 위해서 힘써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전 아직 어려서요’ 그때는 어렸다. 한국서 박사 마치고 미국으로 포닥을 온 지 막 1년이 넘었었다. 미국 사정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리다는 말이 다였다. “그럼, 빨리 크세요!” 그분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그 한마디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에 남아있다. 종종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자책의 순간이나 슬럼프의 문턱에서 꺼내 보는 말이 되었다. 평생을 노동의 관점에서 싸워온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마이라 스트로버’의 회고록 [뒤에 올 여성들에게]는 희미한 의미로 내 마음에 남아있던 “빨리 크세요”라는 말의 의미..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란셋의 첫걸음
성평등은 정의와 권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연구와 최고의 의료를 제공하는데 중요하다. 과학, 의학 및 세계 보건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원한다면, 그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를 대표해야 한다. 남녀평등을 위한 싸움은 모든 이들의 책임이며, 이는 페미니즘이 남성, 여성, 연구원, 의사, 연구비 지원기관, 기관의 지도자 및 의학 저널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저명한 의학저널 중 하나인 란셋(Lancet)은 2월 9일 발행되는 특별호에 과학, 의학 및 세계 보건분야의 여성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https://www.thelancet.com/…/vol393…/PIIS0140-6736(19)X0006-9) 즉, 연구비 수주에 있어서의 여성 편향 현상, 임상 훈련 ..
-
Chemistry : a novel by Weike Wang
이민의 삶, 과학자의 삶, 여자의 삶이 공감되는 이야기. “Diamond is no longer the hardest mineral known to man. New Scientist reports that lonsdaleite is. Lonsdaleite is 58 percent harder than diamond and forms only when meteorites smash themselves into Earth.”“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물질이 아니다. New Scientist 보고에 따르면 론스달라이트 (Lonsdaleite)는 다이아몬드보다 58% 강하며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을 때만 생성된다” 라는 말과 남자친구 에릭의 프러포즈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 화학과 박사과정을 하고..
-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동아시아)
역학(Epidemiology)은 특정 집단 내 발생하는 질병의 빈도와 분포를 기술하고, 그 질병의 요인들을 밝히므로 예방법을 개발하는 학문이다. (Epidemiology is the study of the distribution and determinants of health-related states or events in specified populations, and the application of this study to the control of health problems (1)) 내가 처음 역학을 직접 접한 것은 Post-doc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연구하는 기관의 특성상 이 기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은 “역학”을 주축으로 모든 질병에 대한 예방과 진단 그리고 방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
-
히든피겨스
Hidden Figures (히든 피겨스)히든피겨스 by Margot Lee Shetterly 한창 미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히든 피겨스] 영화를 보고, 재미와 감동, 그리고 미국이란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영화를 보면서 문뜩문뜩 떠올랐었다. 출퇴근 길에 종종 듣는 “과학책이 있는 저녁”에서 여성 과학자 특집으로 소개했던 히든 피겨스를 킨들에서 발견해 읽기 시작한 건…. 큰 실수였다. 일단은 영화를 먼저 본 게 가장 큰 실수였고, 킨들 영문판으로 된 책을 페이지수도 확인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였다. (둘 다 안 본분들은 책을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영화만큼의 소소한 감동은 주지 않지만, 미국의 흑백갈등과 그 사회적 상황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사회적,..
-
비커밍 (미셸 오바마)
크리스마스 연휴, 춥지 않은 동남부에 사는 우리 식구는 눈 구경은 글렀기에 차라리 바다를 보자 싶어 남쪽으로 달렸다. 수확이 끝난 드넓은 목화밭과 소와 말이 늘어지게 누워있는 들판을 지나 야자수들이 즐비한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바다와 눈 보기 쉽지 않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설탕같이 고운 데스틴의 모래밭이 최고의 놀이터였다. 뛰노는 아이들이야 상관없지만 스산한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미셀 로빈슨 오바마”의 [비커밍]을 한번에 주르륵 읽어버렸다. 겉으로 화려한 퍼스트레이디의 회고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계 최강국의 퍼스트레이디 이전에, 아내이자 엄마이자 커리어 여성이자 남부 노예 출신의 조상을 둔, 시카고 흑인 동네 출신인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Becoming Me, Beco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