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동아시아)

2019. 4. 6. 13:06논문 밖 과학읽기

역학(Epidemiology)은 특정 집단 내 발생하는 질병의 빈도와 분포를 기술하고, 그 질병의 요인들을 밝히므로 예방법을 개발하는 학문이다. 
(Epidemiology is the study of the distribution and determinants of health-related states or events in specified populations, and the application of this study to the control of health problems (1))

내가 처음 역학을 직접 접한 것은 Post-doc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연구하는 기관의 특성상 이 기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은 “역학”을 주축으로 모든 질병에 대한 예방과 진단 그리고 방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위과정 동안 모든 연구의 중심이 바이러스와 세포에 맞춰져 있던 나무와 같던 나의 시야가 역학을 통해서 숲을 보는 것으로 관점이 바뀌었다. 새로운 백신이 개발되고 그에 대한 임상실험이 시작되면서, 혹은 의료 소비자에게 소비되면서 달라지는 집단 혹은 사회의 변화는 단순히 발병률이 감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집단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백신의 효과가 달라지며, 그 원인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역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질병의 원인을 찾는 역학자들 중, 저자는 질병에 대한 간접적인 사회적 요인을 찾고, 그 환경을 개선하므로 보건을 증진할 방법을 마련하는 연구를 하는 “사회 역학자”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계를 내고 분석하는 역학자의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그가 수집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자 한다.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사회역학의 중심은 하버드대학교의 낸시 크리거 교수가 주장한 ‘원인의 그물망’ 이론이다( Fig1). 예를 들어, 당뇨병의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듯, 여러 원인들이 서로 엉켜 함께 당뇨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원인의 그물망’을 만드는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찾는, ‘원인의 원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 거미를 찾기 위해 그 그물망을 만들어낸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중심으로,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밝혀내어 사회 구성원의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건강’이란 기본 요건을 찾는 것이 사회 역학의 목적이다.

 

Figure 1. Example of the web of causation for myocardial infarction: a current view. (From Friedman GD:  Primer of Epidemiology,  ed 4, New York, 1994, McGraw-Hill.)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한국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는 설문지에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답을 택한 이들이 다수임에 주목을 한다. 그는 ‘예’와 ‘아니오’를 선택한 이들로 연력, 학력, 소득 수준, 고용형태 및 건강상태에 대한 통계모델을 만들고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선택한 사람들에게 적용했다. 그 결과는 성별에 따른 차이를 뚜렷하게 보였다. 남성의 ‘해당 사항 없음’은 ‘아니오’로, 여성의 해당 사항 없음은 ‘예’로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받은 차별의 경험은 그들의 건강에도 고스란히 흔적을 남긴다. 차별의 경험(아픔)을 차별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아프다고, 차별이라고 입 밖으로 세상으로 드러내 놓지 못한 상처는 몸이 기억하고 그래서 몸이 아프다.

저자는 그 아픔의 “원인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 놓는다. 소방 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 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만나며 사회적 상처가 그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무거운 주제에 명확한 데이터를 제시함과 동시의 그만의 따뜻한 문체로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외향적으로 나타나는 아픔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이 내적으로 겪고 있는 아픔(sorrow)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연구하는 ‘학자의 언어’로 그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다. 그가 보스턴 보건대학원 클랩 교수에게 들었던

데이터가 없다면, 역학자는 링 위에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역학자가 적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싸움이 진행되는 링 위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라는 말은 그가 아픈 사회를 향해 걸어가며, 함께 걷자고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Fig2. Framework for improving community health. (from www.cdc.gov/CHInav)

미국 질병 관리예방센타(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vention)에서 진행하고 있는 [ Community Health Improvement (CHI)] 의 개요(Fig2)를 보면 건강에 대한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인지(What)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지역사회를 확인 (Where)하고,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개인, 사회, 전문가, 사회단체, 종교단체, 교육 및 정부 기관이 함께 일을 하며 (Who), 모든 사람에게 건강과 복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4가지 행동 영역(사회경제, 물리적 환경, 건강 행동, 의료 지원)에 작용할 수 있는 중재나 개시를 실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우리 모두가 “건강”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저자와 같은 사회 역학자뿐만 아닌, “생명 과학자”로서의 “Who” 영역의 나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실험실 밖의 사회를 바라보고 동감하며, 사회의 아픔과 고통에 내가 가진 것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나누는 삶. 그 삶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아픔이 “길”이 되기 위해 “함께” 나아가는 발걸음이 되길 기대해 본다.

 

본 글은 [브릭]에 연재한 글입니다. 

원문링크: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93308&BackLink=L215Ym9hcmQvbGlzdC5waHA/Qm9hcmQ9bmV3cyZQQVJBMz0z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