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협주곡2-30] 우리에겐 여성교수가 필요하다

2019. 7. 17. 22:43과학협주곡

수학과 휴게실에서 과제를 하고 있던 Glazer는 관리자에게 휴게실을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 곳은 수학과 집중반을 위한 곳이니, 당신은 여기 머물 수 없다.”라고 관리자는 이야기했고, Glazer는 “난 수학과 집중반이다”라고 대답을 했으나, 관리자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Glazer는 여학생으로서 휴게실 사용에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고서는, 이 이야기를 주변 학생들과 공유했으며, 자신만이 아닌 많은 여학생들이 경험한 일임을 확인했다.
이 일은 2015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1).

 

그 후 학생들은 수학과 내의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Gender inclusivity in Mathematics(GIM)”라는 그룹을 창설하였다. 이들은 미국 내 상위 대학 중 여성 교수 비율이 낮은 하버드를 포함한, MIT, 예일, 프린스턴, 브라운대학의 수학과 남녀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어릴 때부터 남학생과 비슷한 환경에서 수학을 비롯한 STEM에 노출되었으며, 비슷한 수학 성적으로 일류 대학에 들어온 여학생들은 대학 입학 후, 고급수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보다 컴퓨터공학 등으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많았고, 그 이유를 그들은 수학과의 “닫힌 문화”“여성 교수의 부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모든 종신 교수진이 남성인 하버드의 경우(2), 응답자 중 66%는 그들의 수학적 능력과 성별을 결부시킨 언행을 동료학생들에게 들었으며, 19%는 교수들로부터 들었다고 답했다. 26%는 수강과목 내에서 성불균형을 느껴서 수학 과목을 수강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으며, 그중 몇몇은 ‘수학과에 한 명이라도 여성 종신교수가 있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Photo: Diana C. Perez

중고등학교 여학생을 위한 STEM 교육 향상과 인식의 변화로 인해 대학의 STEM 분야 학과로 진학하는 여학생의 비율은 늘었으나, 대학원 진학, 학교 혹은 기업의 STEM 분야로 진출하는 여성의 비율은 대학교육 기간을 지나며 현저하게 감소한다. 여러 대학의 DI/DEI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하버드 수학과 학생들의 설문조사처럼,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인 학내 문화와 여성 교수의 부재를 통해서, 여학생들은 멘토를 찾을 수 없고, 미래를 내다볼 수 없으며, 그로 인한 자신감 부재로 인해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좋은 다른 학문분야로 전향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학계의 소극적인 대응과 남성 중심의 학계에서 여성이 아닌 “남성성을 띈 여성 (명예남성)”로 생존하게 만들거나, 때론 구색을 맞추기 위한 ‘토크니즘(Tokenism)’(3)으로 미래의 학계를 이끌어갈 현재의 여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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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여성 교수가 필요하다”

하버드 수학과의 GIM 그룹은 수학과 내 성차별 해소를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적으로, 수학과 내에서 여성을 대변할 수 있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니어 레벨의 여성교수 임용을 요청했다. 모든 교수진의 무의식적 편견(unconscious bias)에 대한 교육 의무화, 여성 수학자 초청 강연 요청, 멘토링 프로그램, 수학과 내의 포용성과 협력을 위한 환경 조성, 다양한 수학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입문과정 재개편, 수학과 내의 다양성 그룹(GIM)을 위한 지원 등을 요구했다. 마침내, 2018년 하버드 수학과는 두 명의 시니어 여성교수를 임용하였고, 학부, 대학원 여학생과 교수 사이의 정기적 모임 (Mathematics ClusteRs Engaging Women (CREW))를 위한 지원금을 미국국립과학위원회(NSF)로부터 받았다.

 

미국의 대학들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앞다투어 다양성-포용성/다양성-공평-포용성위원회 (Diversity and Inclusion, DI or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를 발족하였다. 미국의 특성상 흑백으로 시작되는 인종적인 다양성에서부터, 여성과 유학생 및 성소수자에 이르기까지 학교 내의 다양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고, 학부, 대학원, 직원 및 교수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통계조사를 통해서, 평등(Equality)이 아닌 공평(Equity)한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급변하는 사회 다양성과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포용성을 높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NSF를 통해 STEM 분야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커리어 발전을 위한 270 밀리언 달러의 펀드(4)를 조성했으며 2001년부터 47개 주의 160개의 교육기관과 비영리기관에 지원을 했다. 특별히 이 펀드를 지원받은 대학들은 STEM 분야의 여성교수의 신규 임용 비율을 최대 40%까지 늘리고, 임용과정 및 승진과정에서의 무의식적인 편견을 없애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을 하고 있다.

2016년 서울대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양성 위원회(5)를 설립하였고, 두 번의 서울대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하였으며 여성 교원 증대를 위한 다양성 확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국내의 여러 대학들이 다양성 위원회 설립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 말에는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국공립대 여성교수 25% 이상 의무화에 대한 안건을 통과시켰다(6). 지난해 경희대 사회학과 학생들은 여성학 교수 혹은 여성 교수를 뽑아달라고 대자보를 붙였다(7).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최초의 여성교수였던 “마이라 스트로버”는 스탠퍼드 여성교수 비율이 1974년 7%에서 30년이 지나 30%까지 높아졌지만, 년간 0.5% 증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 속도로는 여성교수 50%가 되는 데는 50년은 더 필요할 것이라며 다음 세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8).

 

스트로버 교수의 염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학생들의 요구와 학교의 다양성을 향한 의지 그리고 정부의 정책을 통해, 학교의 다양성을 넘어 이 사회의 다양성-공평-포용성이 발휘되는 날이 멀지 않은 미래에 오길 바란다. 혹시 아는가? [THE세계대학순위] 평가 항목에 ‘다양성’이 포함되는 날이 올지도..

 

※ 주석
1 https://www.thecrimson.com/article/2017/10/20/everyday-struggle-women-math/
2 2009년 하버드 수학과의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로 소피아 모럴이 임용되었으나 2012년 프린스턴 대학을 자리를 옮겼다.
3 토크니즘(Tokenism): 상징적인 보여주기식 노력만 하는 정책 혹은 관행
4 https://www.nsf.gov/crssprgm/advance/
5 http://diversity.snu.ac.kr/
6 https://news.joins.com/article/23238645
7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264.html
8 [뒤에 올 여성들에게] 마이라 스트로버 저, 제현주 역/ 동녘

 

본 글은 브릭의 [과학협주곡]에 연재한 글이다. 

원문링크: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02654&BackLink=L215Ym9hcmQvbGlzdC5waHA/Qm9hcmQ9bmV3cyZQQVJBMz00M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