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협주곡 2-17] “엄마, 학회가자!”

2019. 5. 3. 23:39과학협주곡

2018-10-29 09:41)

 

지난 8 미국 바이러스 학회 (American Society for Virology, ASV)에서는 이메일로 간단한 설문 조사를 회원들에게 요청했다. 매년 여름 개최되는 ASV 연례 학회에 많은 바이러스학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한 보육이나 노약자를 위한 간병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 조사였다. 학회 참석 결정에 자녀 보육 노약자 간병이 고려대상이 되는지, 만약 주말에 열리는 학회에 참석할 경우 학회장(on-site)에서 보육/간병 시설을 이용할 용의가 있는지 아니면 펠로우쉽의 형태로 보육/간병을 전담할 인력의 여행비용이나 집에서 학회 기간 고용할 인력(off-site) 대한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지에 관해서 물었다.

 

우리에겐 생소해 보이는 설문 조사는 사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학회에서 이미 10 전부터 시행해 왔던 정책 하나다. 미국 세포생물학회(ASCB), 미국 인간 유전체 학회 (ASHG), 유럽 생물 진화 학회(ESEB) 비롯한 많은 학회는 연례 학회에 참석하는 대학원생, 박사 연수 과정 혹은 초기 경력자 등의 제한적인 경제 상황에 놓인 연구자들에게 기업의 특별후원이나 학회 차원에서의 펠로우십을 통해 학회 기간 동안의 자녀 보육 노약자 간병 시설을 제공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여행경비 인건비에 대한 지원과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보육 서비스를 학회장 현지에서 제공하고 있다1.

 

많은 연구자가 학회에 참석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함과 동시에 구직, 연구 협력, 연구비 신청 등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 자신의 연구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다른 연구자에게 인정을 받는 장으로서 다음 경력으로 도약하기 위한 유용한 정보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 과학자의 경력 과정에서 이런 학회 참가의 필요성이 가장 높은 시기는 박사과정, 박사 연구원, 초임교수 등의 초기 경력의 시기이다. 사회적 측면으로 봤을 상대적으로 어린 자녀를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부모들의 연령대가 이들과 들어맞는다. UC 버클리 대학교 생물 물리학 박사 과정 연구원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박사 과정 연구원 25% 전년도 내셔널 학회에 연구발표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으며, 그중 기혼 여성의 비율은 45% 달했다2.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지 이슈(양육, 연구) 한가운데 있는 초기 경력 단계의 여성 과학자들이 가장 높은 비율로 학계를 떠나거나 정착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초기 경력의 여성 과학자들이 민감한 시기를 이겨낼 있도록 여러 학회에서 위에서 이야기한 이러한 다양한 노력을 점점 늘리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의 이면에 있는 사유(思惟) 과정에 주목해 필요가 있다. 번째는 공론화와 인식의 변화이다. 과학계의 수많은 인력 통계에서 나타나는 여성 과학자의 ‘새는 파이프’ 현상은 초기 경력 단계의 양육과 연구를 병행하는 이들에게 민감하게 나타나고 있다. 학위를 마치고 다음 단계로의 도약과 안정적인 연구 정착에 기본적인 학회 참가의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 ‘가장 취약한 그룹’에 대해 학회가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문제들을 학회 내에서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ASV 경우는 올해 처음으로 학회에서 15 거리에 유료 보육시설 이용을 추천했다가, 예상보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전체 회원들과 ‘공론화’ 과정을 시작했다. 미국 물리학회 (American Physical Society, APS) 학회 기간 가정이나 현장에서 발생하는 보육 비용 지원 정책을 Elsevier Foundation 지원을 통해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3 동안 89건의 신청을 받았으며 79건에 대해 비용을 제공했다. 그중 47건은 대학원생과 박사 과정에, 그리고 21건은 초기 경력자에게 수여했으며, 수여자들의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제도를 개선하고, ASP 자체 독립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2. 설문 조사를 하고, 분석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산을 세우고, 시범적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안정화하는 시간적 경제적 노력의 과정을 소수의 정책 결정자가 아닌 전체 학회 회원의 공론화 과정과 해당 그룹의 적극적인 목소리가 반영되었다는 의의가 있다.

번째는 문화의 변화이다. 몇몇 학회 등록 사이트에서는 마치 리조트 광고 문구처럼 Family-friendly conference”라는 안내를 걸어놓았다. 학회장에는 세션 시간이나 네트워크 시간 동안 아이를 맡길 있는 보육 시설과 모유 수유나 모유 유축을 위한 수유실 공간 또한 배려가 아닌 ‘기본’으로 학회 측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는 관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과학자 집단이라는 과거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버리고, 아이를 데리고 학회에 오는 것이 지탄받거나 무능력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남녀를 불문하고 ‘과학자이자 부모’인 신진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의 기회를 확대해 학회 내의 다양성과 혁신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뒤에는 학회 내의 여성 과학자들의 의견 표출 반영에 적극적인 지도부의 노력이 있다.

 

한국 사회로 돌아가 보자. 한국 과학계와 여성계는 ‘여성 과학자 지원’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나 다양한 경력 과정에 속해있는 정책 수혜자 그룹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묻거나 수렴하고 있는가? 선진국의 여성 과학자 지원제도를 공론화나 현지화 과정 없이 ‘평등’(Equality)이라는 동일한 높이의 벽돌로 만들어 보기 좋게 쌓아놓고 있지는 않은가? ‘공정한 형평성’(Equity) 위한 과학계의 다양한 목소리와 필요의 다각적인 분석과 여성 과학자들을 비롯해 함께 협력해 나아가는 과학 지성 집단의 이해와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정책은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후배들을 향한 반발(backlash) 그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러한 공론화 과정과 함께 여성 과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을 이끄는 자세이다. 여성 과학자이자 어머니로서 무게 있는 가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과학계에서는 이상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고 있는가? 여성 과학자의 문제를 정부나 여성 과학기술자 단체에 맡겨둔 , 정책 결정의 자리보다는 수혜자의 자리에 머물고자 하지는 않는가? 한국의 수많은 과학 학회의 여성분과는 얼마나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학회 내의 여성 과학자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하고 있는가?

 

로타바이러스의 아버지인 Dr. Roger Glass 와 큰 아들 (2012 dsRNA Virus 학회)

지난 9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총회의 ‘넬슨 만델라 평화회의’에는 뉴질랜드 총리인 저신다 아던 (Jacinda Ardern) 생후 3개월 딸이 ‘퍼스트 베이비’의 신분으로 참석했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기는 유엔총회에 동행했으며, 유엔 사무국 측은 ‘뉴질랜드 퍼스트 베이비’라고 쓰인 모조 출입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아던 총리는 아이와 동행한 일정은 자신에겐 도전이었으며, 일하는 곳을 개방적으로 만들고, 이는 다른 여성들을 위한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유엔의 대변인은아던 총리는 워킹맘보다 그녀의 나라를 대표할 나은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 지도자의 5℅만이 여성이기에 우리는 가능한 그들을 환영할 필요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다3.

과거의 언니들이 해결해야 가장 도전이 남성 세계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언니들은 더욱 형평성 있는 환경을 개척하고 아이와 함께 당당하게 걸어가는 여성과학자의 길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도전 앞에 서있다. 아이와 함께했던 아던 총리의 길을 환영했던 유엔의 긍정적인 자세처럼 언니들의 도전을 환영하는 다양성과 혁신에 적극적인 그런 한국 과학계가 되길 바란다.

주석

1. http://www.pnas.org/content/early/2018/03/01/1803153115

2. https://www.sciencemag.org/careers/2014/08/new-initiatives-offer-child-care-solutions-traveling-scientists

3.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4743

 

본 글은 [과학협주곡]에 연재한 글입니다. 

원문링크: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98974&BackLink=L215Ym9hcmQvbGlzdC5waHA/Qm9hcmQ9bmV3cyZQQVJBMz00MQ==

 

[과학협주곡 2-17] “엄마, 학회가자!”

지난 8월 미국 바이러스 학회 (American Society for Virology, ASV)에서는 이메일로 간단한 설문 조사를 회원들에게 요청했다. 매년 여름 개최되는 ASV 연례 학회에 많은 바이러스학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한 보육이나 노약자를 위한 간병에 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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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7개월이었을때, 학회가고 싶은 나를 위해 남편이 따라 나섰다. 비행기로 2시간 거리 학회에 가서 남편은 정말로 아이만 돌봤다. 나는 아침에 젖 먹이고, 커피타임에 방에 들어가 이유식 먹이고, 점심에 점심 싸들고와 먹으며 젖 먹이고, 학회 갔다가 커피 타임에 또 이유식 먹이는 일정을 이틀을 하고 나니 남편에게 미안했다. 결국 마지막 날 하루는 남편에게 자유의 시간을 허락하였다. 학회장 맨 뒷자리에 앉아 세미나를 듣는데 유모차 끌고 학회장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 위로가 되었다. (동지가 있다는 것이 큰 위로..) 큰 아이는 그 덕에 밤에 열린 리셉션까지 참석해 '로타바이러스의 대가'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 후로는 절대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학회에 같이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연구소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는 나의 경우는 남편의 비행기표만 내가 부담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지만, 박사과정생, 포닥, 신임교원의 경우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미국과 유럽의 학회에서는 이들을 끌어 안고 있다. 탁상공론으로 결정된 제도는 때로는 여성들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있다. 공론화하고 소통하고 이해하고 실행의 오차를 겪으면서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책들이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어야할 이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