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남성』의 사회와 여성 과학기술인

지난 3월 미 항공우주국 (NASA)은 미국 출신의 NASA 소속 여성 우주비행사 ‘앤 매클레인’과 ‘크리스티나 코크’가 국제우주정거장 (ISS)에서 캐나다우주청(CSA) 소속 여성 우주비행 관계사 ‘크리스틴 파치울’의 지원을 받아 여성만으로 구성된 우주유영을 나선다고 발표했다. 1984년 구 소련의 우주인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가 여성으로 처음 우주유영을 한 이후에 남녀 혼성팀의 우주유영은 있었지만,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우주유영은 최초로, NASA 의 발표는 인류 우주인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을 만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3월 29일, NASA는 ISS의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던 ‘여성 우주유영팀’의 유영을 취소하고, ‘크리스티나 코크’와 남성 우주인인 ‘닉 헤이그’가 임무를 수행한다고 발표했다.(⁠1) 이유는 우주복 부족이었다. 현재 NASA 가 보유하고 있는 우주복 중 사용 가능한 우주복은 11개, 그중 4개만이 ISS에 있으며, 그중 2개가 조립된 상태로 중형, 대형이 각각 하나씩 있다. 중형과 대형을 입고 훈련을 했던 메클레인은 실제 ISS 에서의 유영 훈련 중 대형 보다는 중형이 자신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보고했고, 안전을 위해 NASA 는 중형 우주복을 조립하는데 드는 시간(약 12시간)보다 사람을 바꾸는 것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최초의 ‘여성 우주유영팀’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여성 우주인에게 맞는 중형 우주복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세계 최초 ‘여성 우주유영팀’을 취소한 NASA를 향해 세계인들은 조롱을 쏟아 부었다. 그 조롱과 분노의 이면에는 급변하는 여성의 사회 진입에도 불구하고, ‘평균 남성(Reference man)’ 기본값 (default)의 틈에 여성을 끼워 넣어 심각한 안전문제에 노출시키거나, 반대로 어렵게 진입한 여성들에게 기회의 문을 닫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영국의 한 여성 경찰관은 남성 체형에 맞추어진 방탄조끼 때문에 가슴 축소 수술을 하는 일이 있었고(2), 2016년 이후 특수부대에 배치되었던 미군 여성들은 여성의 신체를 고려한 장비가 주어지지 않아 남성 장비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터를 누볐다⁠(3). 자동차 안전실험에 사용하는 ‘더미(dummy)’는 “평균 남성”의 신체에 맞춰져 있어서, 그 실험을 통해 나온 데이터는 여성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반영하지 못했으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안전벨트 조차도 여성의 몸은 고려되지 않았다(⁠)4. 미국의 여성 소방관들은 남성용 장비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며 한 손으로는 대형 사이즈의 바지를 잡고 한 손으로는 화재진압을 하다 부상을 당한 경험도 있으며(5), 엔지니어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안전 고글, 부츠, 헬멧 등의 안전장비 역시 여성의 몸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6)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실험실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적인 보호장비가 아닌 내열성 장갑, 초극 저온 장갑이나 절연 장갑, 방진 마스크 등의 특수한 보호장비와 연구시설들은 여성의 몸이 고려되지 않아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며, 실험실의 시약 및 감염물질 등의 생식 독성에 대한 안전교육과 안전 규제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가임, 임신, 수유 등을 하는 여성과학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러한 ‘평균남성’의 사회에 여성을 끼워 맞추는 일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 속도에 맞추어 소프트웨어인 안전관리 제도와 규제, 그리고 안전장비라는 하드웨어를 준비하지 못함에 있다. 스포츠 프로덕트 디자인을 가르치는 오레곤 대학교의 Susan L. Sokolowski교수는 여성의 몸은 체형과 크기가 다르고, 생리적인 차이로 인한 체온의 변화와 호르몬으로 인한 근육의 발달 등을 고려한 작업복과 안전장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7) 더불어 여성의 몸을 연구하고 그들에게 맞는 우주복과 같은 특수 안전장비를 개발하는 과정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과 남성 정책 결정자에 의해서 제한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하며 ‘평균남성’과 다른 여성을 위한 개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또한, 최근 5년간 한국에서 발생한 연구실 안전사고 분석에 따르면, 여성 피해자가 남성 피해자 수를 넘어섰으며, 여성과학자 안전관리위원회 조사에서는 20대 여성과학자의 17.7%는 연구실이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8)

 

미국 최초 여성 우주인이었던 “샐리 라이드”가 기자들에게 받았던 질문은 “우주 비행이 생식 기관에 영향을 미칩니까?”, “일이 잘 안 풀리면 울곤 하시나요?”였다. 물리학자였던 그가 우주에서 어떤 임무를 하게 되는지, 남성과 다른 여성으로 어떠한 안전장비가 주어지는지에 대한 의문은 세상에 없었으며, 첫 여성 우주인을 위해서 엔지니어가 그에게 물었던 질문은 “탐폰 100개를 실으면 되겠나?”이었다. NASA 우주인 후보 클래스에 여성이 반을 차지하고, 실험실 연구원의 반을 여성이 차지하는 현재, 우리는 사회와 학계의 지속적인 여성의 성장을 위해 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여성을 알아야한다

여성의 몸을 연구 해야하고, 여성의 몸을 사회가 이해해야 하며, 여성이 그들의 일터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닌, 안전한 환경에서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여성과학기술인 총연합회(여성과총)는 2014년 [여성과학자 안전관리위원회]을 신설하고, 다양한 연구환경에서의 여성과학자가 노출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여성과학기술인을 위한 연구실 안전관리 가이드라인”⁠(9)을 발간했다. 또한 여성과총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와 함께 과학기술분야 연구실 안전관리 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필자의 경우, 임신 5주에 자가검진을 하고 보스에게 알렸으며, 보스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동물실험을 하는 필자를 위해 연구소 클리닉에 연락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안전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으며, 동물실험 관리부서에서는 필자의 동물실 출입시간을 관리하고, 체형 변화에 따른 방진 마스크의 Fit test를 주기적으로 받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임신을 했는데 실험하는 게 안전할까요?”라는 질문이 브릭에 올라오는 대신, 각 연구소와 대학의 여성을 위한 안전기준과 연구 책임자들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성을 연구하고 그들을 고려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여성과 더불어 ‘평균남성’이 아닌 남성, 인종, 장애 등의 다양한 이들을 인정하고 경제활동자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것이다. 샐리 라이드가 우주선에 처음 탑승하면서 우주선에 처음으로 “화장실’이 탑재되었으며, 여성이 안전한 연구실은 남녀 모두에게 더 안전한 연구환경이 될 수 있다.

혁신(innovation) 은 그렇게 일어날 수 있다.

 

 

※ 주석
1 https://www.space.com/anne-mcclain-spacesuit-response-video.html
2 https://www.theguardian.com/uk/1999/may/20/nickhopkins
3 https://www.military.com/daily-news/2016/03/04/form-fitted-body-armor-rolling-out-combat-roles-expand-women.html
4 https://www.washingtonpost.com/local/trafficandcommuting/female-dummy-makes-her-mark-on-male-dominated-crash-tests/2012/03/07/gIQANBLjaS_story.html?noredirect=on&utm_term=.7a092939b30a
5 https://www.bendbulletin.com/home/5869636-151/female-firefighters-using-equipment-designed-for-men
6 https://www.arbill.com/arbill-safety-blog/ppe-for-women
7 https://www.upi.com/Top_News/Voices/2019/04/05/NASA-limits-womens-achievement-with-ill-fitting-space-suits/4431554466627/
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91615
9 https://www.kofwst.org/bbs/bbs_download.php?bbs_data=aWR4PTgxMTAmc3RhcnRQYWdlPTAmbGlzdE5vPTI1JnRhYmxlPWNzX2Jic19kYXRhJmNvZGU9ZWJvb2smc2VhcmNoX2l0ZW09JnNlYXJjaF9vcmRlcj0=||&download=1

 

*본 글은 브릭 '과학협주곡'에 연재한 글이다. 

원문링크: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04248&BackLink=L215Ym9hcmQvbGlzdC5waHA/Qm9hcmQ9bmV3cyZQQVJBMz00M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