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밖 과학읽기] 과학기술의 일상자 (정대인, 김한별 저/에디토리얼)

2019. 7. 21. 05:31논문 밖 과학읽기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 (aka과정남)이란 과학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두 청년이 과학기술정책과 과학분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과학기술”이라는 책 표지의 작은 글씨보다 “일상사”라는 큰 글씨에 방점이 찍힌 만큼 ‘과학기술서’라고 겁먹지 말고 ‘과학 대중서’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책을 들었으면 한다. 저자들 또한, 그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공기 중에 풀어놓았던 그들의 생각과 말들을 다시금 엮고 다듬고 글로 만들어 내놓은 [과정남]의 기록이자,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것’이라고 이 책을 정의한다.


“과학기술에 대해 ‘반드시’는 아니지만,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지켜나갈 때 알면 좋을 과학기술을‘과학기술정책’이라는 렌즈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기초과학은 무엇인가? (1장 기초과학은 중요하다(?), 11장 과학기술정책의 전략)
“기초과학”의 사전적 의미는 공학이나 응용과학 따위의 밑바탕이 되는 순수과학으로 자연 과학의 기초 원리와 이론에 대한 학문들 뜻한다.” 과연 이런 사전적 정의가 ‘이것은 기초과학이고 저것은 응용과학’이라고 딱 떨어지게 나눌 수 있는 영역인 것인가? 
우리 사회의 기초과학은 지식의 축척이란 목적만을 가지지 않는다. 연구비를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목적은 과학으로 축척한 지식을 사회에 빠른 속도로 흡수해 무엇인가 “돈 값” 하는 것을 눈앞에 보여주기를 원한다. 연구자로서 느꼈던 연구비 수주의 명분들이 그랬고, 국가에서 원하는 사업이나 정책에 들어맞는 하향식 (top-down) 연구비 지원이 그랬다. 그러한 정책에 따라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해 현재까지 달려온 과학기술은 오늘날 “추격의 성공과 탈추격의 실험”이란 화두 앞에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을 뚜렷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못하다. 저자는 선진국 같은 지식의 최전선에 서서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국가가 되지 못한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색다른 제안을 한다. 

“인공지능 같은 선제적이고 융합적인 분야를 이끌어나갈 수 없다면, 연구자 지원정책, 기본적인 인권문제, 21세기에 새로이 나타난 기술과 산업에 적합하지 못한 규제, 여러모로 낙후되어 오직 국내에서만 쓰이는 표준 등등에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해보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목표와 전략이 ‘전문가들 뿐 아닌 시민들에게도 열려있는 오픈 사이언스 달성, 과학연구의 기본인 논리적 사고방식 증진, 인권이 보장되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석 같은 것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과학계의 “소수”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4장 떠돌이 계약 노동자)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으로 생계 걱정 없이 밥 벌어먹고살 만큼의 생활이 되는가?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장장 10년이 가까운 세월을 비경제활동 인구로 노동의 현장에 있다가 포닥, 연구교수, 위촉 연구원, 초빙교원들의 타이틀을 거머쥔다고 그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과학계의 비정규직 문제, 국내와 국외를 떠도는 안정된 삶을 갖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은 과학계의 소수의 상황이 아닌 “다수”의 상황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연구 보조 인력(8장 보이지 않는 기술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언제까지 모유 먹이는 게 좋은지 과학자들이 좀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이 두뇌 발달에 모유가 좋다고 돌이 지나도 끊지 않고 직장 다니면서 끙끙대는 아내를 보며 안쓰러워 누군가 나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이처럼 사회는 과학자들에게 과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와 복합적으로 묶여있는 문제들까지도 ‘과학자의 마술’을 통해 그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사방에서 ‘카더라’라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홍수 가운데 과학자가 무언가를 명확하게 결정해 주길 바라는 사회의 이러한 시선은 우리 사회와 과학계의 큰 간극이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1. 과학은 완성된 지식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의 지식이다. 
2. 과학자, 공학자, 전문가들도 서로 다투고, 합의하지 못하기도 한다. 
3. 우리가 과학을 접하고 전달받는 구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4. 지식체계는 그것이 속한 사회와, 사회는 지식체계와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다. 

저자들이 이 책에 담은 이야기는 정부, 정부관료 및 자문기관 등의 정책 결정자들에 의한 이야기가 아니다.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그동안 그들이 만난 과학계의 평범한 인생의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녹아있다. 그러기에 정책결정자들이 쉽게 풀어놓지 못하는 대학원생, 비정규직 연구자, 여성과학자, 연구보조인력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러기에 과학의 열정을 가진 이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하고 있는 과학계의 윤리와 실적위주의 연구에 대한 평가와 편향된 연구비 지원에 대해 이야기 거스름 없이 담고 있다. 

기초과학은 저자들이 만난 과학자들이 흘린 노력이란 땀으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 과학계 외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평범한 그들의 일상이 있음을, 그래서 과학계-정부-기업의 경제적 카르텔을 위한 공조가 아닌, 과학자-정책결정자-사회의 이해를 통해 상생하는 모습이 있기를 저자들은 바라는 게 아닐까?


본 글은 브릭의 [논문 밖 과학읽기]에 연재한 글임

원문 링크: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99748&BackLink=L215Ym9hcmQvbGlzdC5waHA/Qm9hcmQ9bmV3cyZQQVJBMz0zNg==